[한겨레] “시민은 서비스 소비자 아닌 ‘정부 파트너’…자발성 제고 지원해야”

2018-01-04 조회 : 509댓글 : 0

[더 나은 사회] 사회적경제 지도자 마이클 루이스 대담

-“‘회복력’ 있는 사회로 가는 데 지름길 없어
몬트리올 지역재생 사업 땐 주민 인식 제고에만 1~2년

-정부는 중앙관리식 지원 대신 시민 조직화 지원하고
시민은 ‘성장보다 환경 회복’으로 사고 전환 필요”

 

“시민의 자발성을 고려하지 않는 하향식 지원은 마중물이 아니다. 깔려 죽을 물이다.”(이은애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사회적 가치’가 대세로 떠올랐지만, 그간 현장에서 빈곤·주거·도시재생 등 사회문제 해결에 앞장서왔던 시민사회 조직들은 이런 움직임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대기업 최고경영자의 새해 인사에서도 ‘상생’, ‘사회적 가치’가 줄이어 언급되고, 몇 년째 국회에 계류 중인 사회적가치실현법, 사회적경제기본법, 사회적경제기업제품 판로지원법 등 사회적 가치 3법이 통과되리라는 기대감은 높다. 하지만 현장 활동가들 사이에선 정부가 사회문제에 접근하는 방식과 속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제법 크다.
우려의 핵심은 정부가 가시적 성과에만 집중해 자발성이나 관계망 같은 시민적 역량 축적을 간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원과 행정력을 바탕으로 정부는 중간지원조직 등을 만들고, 사업 단위로 쪼개 사회문제에 접근한다. 이렇게 되면 행정의 효율성은 높을지 몰라도, 시민의 참여는 어렵다. 이 때문에 현장 활동가와 연구자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민이 사회문제 해결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정부가 판을 짜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고민을 나누는 자리가 최근 마련됐다. 캐나다 지역공동체재생센터(Canadian Centre for Community Renewal)의 설립자인 마이클 루이스 대표, 이은애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박치득 은평구사회적경제허브센터장, 윤전우 서울시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루이스 대표의 책 <전환의 키워드, 회복력>(따비 펴냄, 2015) 공동 번역자인 전대욱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수석연구원이 지난달 20일 서울시 사회혁신파크 서로배움터2에서 대담을 진행했다. 루이스 대표는 캐나다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시민이 주도하는 지역문제 해결 방법을 연구하고 실행해온 사회적 경제의 대표적인 지도자로,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주최한 ‘커뮤니티 리질리언스(지역 회복력)를 위한 사회적경제 및 도시재생’ 포럼 참여차 방한했다.

 

이은애(이하 이) 한국의 전통적 시민운동은 자조적이었다. 정부의 탄압 속에서 자라면서 시민의 공유 자산을 만들고, 공동의 힘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주민 조직이 잘 뿌리내리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서울 광진구의 광진주민연대도 철거 반대 운동 등을 20년간 해오며 주민들 속에서 싸워온 경험이 있다. 이 자발성과 자조성을 문민정부 이후에는 오히려 잃어버린 느낌이다. 정부 지원은 늘어나지만, 지원 방식은 중간 지원조직 등 시설을 확장해 “여기 시설 만들었으니까 이게 사회적 자본이야” 하며 시민활동을 한곳에 모아 관리하는 식이다. 시민사회도 이에 익숙해졌다. 

마이클 루이스(이하 루이스) 지금 말씀에는 정부나 행정에 식민화되었다는 우려가 읽힌다. 어느 나라나 정부는 마음이 급하기 마련이다. 정해진 시간 내에 빠르게 성과를 보여주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복력’ 있는 사회로 가는 지름길은 없다. 사회적 위기에 대응하려면 주민협의체뿐 아니라 소상공인 등 다양한 주민 집단이 참여한 촘촘한 네트워크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게 서로 다른 욕구가 논의될 때 넓고 강한 자발·자조가 생긴다. 정부도 그 방식을 지원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캐나다 몬트리올시의 지역 재생 사업에서 정부가 가장 중요시한 것이 주민 조직화와 인식 제고였다. 정부는 이 과정 지원에만 1~2년을 투자했다. 주민들이 만나고, 조직되고, 우선순위를 정해 “이게 필요하다”고 할 때 정부가 주민 목소리를 듣는 것까지를 하나의 과정으로 봤다. 
윤전우(이하 윤) 도시 재생 쪽에도 비슷한 고민이 있다. 시민이 적극적으로 활용·생산·소비하는 공유재산을 어떻게 창출하는가다. 재원 확보해 기술자 몇 명 투입하면 센터는 금방 지을 수 있다. 하지만 지역사회의 참여를 촉진하려면 주민을 조직하고 다양한 관계자 그룹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봐야 한다. 빨리 하려다 보면 이런 민주적 의사 결정 과정을 생략하게 되는데, 금방 문제가 생긴다. 그 조직이 뭘 하려고 할 때 바로 나타난다. “동의 구하지 않았잖아요?” 한다. 
박치득(이하 박) 중앙 주도, 양적 팽창 중심의 성장·성공 경험이 유효한 우리 사회가 바뀌기 어려우리라는 우려가 있다. 지역 공동체 회복 과정에서도 조직 리더들을 만나는데, 이게 정말 풀뿌리 주민을 만나서 소통하는 것인가 하는 고민이 든다. 
루이스 하향식이 전적으로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합의가 이루어진 뒤 실행 방식에는 차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시민조직이 정부의 파트너가 되고,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시설을 늘린다고 역량이 늘지는 않는다. 캐나다, 유럽, 미국의 좋은 사례들을 모아 들여다본 뒤 내린 결론이다. 정부가 나쁜 의도로 하향식, 중앙관리식을 도입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러면 결과적으로 문제가 생기니 피해야 한다는 뜻이다.

전대욱(이하 전) 문제는 재원이다.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조직을 지원하는 사회혁신 금융이나 민간 지원 체계가 부족하기 때문에 자꾸 정부에 기대게 된다. 그러면 예산 채워 보조금 지원받는 방식에 길들여지고, 주민들은 동원될 수밖에 없다. 

 다른 문제도 있다. “시민의 힘을 기반으로 순환되는 구조를 만들자. 정부는 보조만 하라”고 하면 시민사회에서조차 “정부 책임 축소하려 하나”, “지원을 더 늘려야 한다”는 식의 말이 나온다. 시민사회도, 진보정치 세력도 “은혜로운 새 정부가 들어섰으니 중앙에서 표준화된 정책 잘 만들어 자원 풀어주세요” 하는 태도를 넘어서야 한다.
루이스 정부 지원은 꼭 필요하지만 그 방식을 달리할 수 있다. 사업적 접근이 아니라 파트너적 접근이 중요하다. 미국 뉴햄프셔주에서 정부가 세액공제를 통해 확보한 예산 2천만달러의 사용처를 주민이 결정했던 사례가 있다. 주 전체를 아우른 시민 네트워크 조직이 시민들의 제안을 검토해 사용처를 결정했다. 정부가 권력을 빼앗긴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파트너적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은 시민이 제공한 자산의 소유권이 시민에게 없다. 사용처를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시민들은 소비자가 된다. 참여를 늘리면 더 많은 사회적 자본이 생성되고 그를 통해 새로운 사회적 서비스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지만 문재인 정부의 지원 방식도 일방적이긴 마찬가지다. 다른 방식이 가능하다는 확신이 있는데, 2년 전부터 서울시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는 시민사회 그룹이 모여 공간을 기획하고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이 경험치는 또 시민에게 남을 것이다.
전 공동체 자산, 시민 자산과 같이 공과 사의 중간 영역이 필요하다.
 분권화가 필요한데 이에 특화된 가치 측정 방식을 만들면 어떨까?
 광진구는 주민 조직이 잘되어서 의사결정 과정에 중국 상인회까지 참여한다. 이처럼 의사결정의 포용성과 민주성을 넓혀가야 한다.
 배타적인 ‘우리’를 넘어 시민들이 공유재, 공동의 이해관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 또 촛불이 만든 정권은 시민에게 권력을 돌려줄 방법을 고민해야 하고, 시민은 각자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루이스 지금 세대는 기후변화, 금융, 주거, 에너지, 식량 등 다방면에서 예측할 수 없는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이에 유연하게 대처하려면 시민의 관계망과 참여가 중요하다. 오늘은 한국의 정치·사회적 상황상 중앙집권적 정부 권력 이야기를 많이 나눴지만, 사실 이는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문제다. 정부가 회복력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데 마중물 역할을 하게 하려면, 시민이 먼저 성장보다 환경 회복 지향으로 사고를 바꾸어야 한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26197.html#csidx9ce57f1b621c3f096a9af2353fe4c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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